장마철이긴 장마철인가 보다. 지난 주말부터 시작해서 하늘이 도통 웃을 생각을 하질 않는다.
그래서인지 한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돌이켜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논문은 그저 제자리걸음만 반복했고, 중국어 책은 건성으로 한 두번 읽었나보다.
그렇다고 딱히 기억에 남는 문화생활을 한 것도 아니었고,
같이 사는 우리 집 백곰과 알콩달콩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고.
그저 매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특별한 것 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한 거라고."
뭐, 핑계를 대 보자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주 초에 주문한 매우 읽고 싶었던 책들(공지영의 수도원기행, 그리운 메이 아줌마, 얀 이야기 등; 이 책들을
읽으면서 한 주를 보냈더라면 오직 평화로움과 즐거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을 것을.),
그 책들이오늘 금요일이 되도록 배송이 되질 않았고, 보고 싶었던 영화 몇 편, '세퍼린'이나 '애니 레보비츠'는
내가 사는 대전의 어디서 상영하는지 도통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고,
그나마 내 빈 시간을 꼬박꼬박 유쾌하게 채워주는 PEPER.
그런데, 이번 달 PEPER의 주제는 날씨만큼이나 너무 진지했다.
그래서 금요일 아침이 되어서는 눈을 뜨자 곧 '아주 유쾌한 시간들'이 그리워졌고,
CD장에서 '한 판 놀아보세!'라고 외치는 '킹스턴 루디스카'의 'Skafiction'을 꺼내들었다.

그들을 처음 만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백곰과 내가 서울의 홍대에서 밴드 생활을 취미로 하며 홍대의 인디 공연과 밴드 음악을 꽤나 즐기던 시절.
어느 토요일에 우리의 단골 합주실이었던 '아이뮤직맨'의 이철희 사장님이 그 특유의 유쾌상쾌한 목소리로,
"시간 있으시면 같이 공연이나 보러 가시죠? 저희 '킹스턴'이라고 저희 합주실 오는 팀인데 연주가 아주 좋아요."
..라고 제안하신 것이 계기가 되어
그 날 백곰과 나, 철희 사장님과 당시 합주실에서 일을 도와주었던 민교 씨,
이렇게 넷이서 공연장 'DRUG' 으로 갔다.
평소 백곰과 나는 Brass밴드를 꼭 한번 하고 싶다는 말을 몇 번 나눈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 날 그 공연을 본 것이 우리의 그런 꿈을 대리충족 시켜주기에 꽤나 충분했던 것 같다.
경쾌한 트럼펫과 트럼본 소리, 거기에다 감성을 자극하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색소폰,
퍼커션을 연주하며 절묘하게 추임새를 넣는 재간이 넘치는 보컬의 목소리가 한데 어울려
마치 신명나는 한 판 놀이판이 공연장에 벌어진 듯 했다.
시인이자 뮤지션이신 성기완 씨의 말에 의하면 이것이 바로 '잔치'다.


킹스턴이 연주하는 음악 장르는 '스카(Ska)'로, 자메이카 지역에서 시작된 것이며
이것이 나중에 '레게'의 원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킹스턴의 음악을 들어보면 내 입에서도 절로 추임새가 나올 만큼 매우 한국적이다.
으샤으샤 쿵짝쿵짝, 하는 박자의 강세는 꼭 두 번째 박과 네 번째 박에 꽂혀 어깨를 들썩들썩거리게 만든다.
'시름도 걱정도 모두 잊고, 흐린 날씨 따위일랑 관계없이
한 판 신나게 놀아보세!'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연주가 단지 신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기분과 마음을 들었다 놓아다 하는 것이 어디 신명만으로 되는 일이던가.
단순하면서도 귀와 입에 오래 기억되는 멜로디,
진정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만이 전해줄 수 있는 향기,
듣는 사람에게까지 전해지는 브라스의 숨소리에 묻어나오는 즐거운 땀 냄새,
팀웍이 없이는 절대로 맞아들어갈 수 없는 섬세한 박자와 음색 조절.
공연을 듣는 내내 나는 한국에서도 이런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고 또 감사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홍대에서 그들의 공연을 본 지도 어느덧 2년 가까이 흐른 지금,
며칠 전 이문세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킹스턴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마도 그들의 음악이 점점 더 사람들 마음 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리라.
반가운 마음에 백곰에게 알려주었더니 백곰도 좋아라 한다.
보물을 남들보다 일찍 발견한 자의 작은 기쁨이라 할 수 있을까.
이번 주말은 킹스턴 음악을 들으면서 신명을 재충전해야겠구나! 하늘도 어느새 밝게 웃기 시작한다. 앗싸!

+ '킹스턴 루디스카(Kingston Rudieska)' 멤버들
최철욱 - 트럼본
오정석 - 트럼펫, 후루겔 혼
정은석 - 트럼펫
박헌상 - 색소폰
정재헌 - 색소폰
최문주 - 베이스
유선화 - 드럼
서재하 - 기타
이종민 - 키보드
이석율 - 보컬, MC, 퍼커션
+ 앨범 'Skafiction'(2008) 수록곡
1. Skafiction
2. My cotton candy
3. Top o'the morning
4. 걷고 싶은 거리
5. 비오는 날
6. Carousel
7. Shooting star(feat. yozoh)
8. A piece of peace
9. Psychopath
10. Rudie's aroud
11. Oscar wilde(rep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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